미술 작가들의 글쓰기를 응원하며 2025년에는 이자용 작가의 에세이 '기록이 없는 탐험가' 를 진행합니다.
2025 예술가 에세이ㅣ이자용
무언가
- 말 없는 노래들
“ 이제는 환하게 밝아진 기분을 느껴야 하는 그런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무언가가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그리움,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불특정한 어떤 욕구. 이 감정이 살아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위쪽 창문으로 몸을 내밀고 거리를 내려다보았을 대, 그러나 실제로 거리를 바라본 것은 아니었을 때, 갑자기 나는 축축하게 젖은 걸레들 중 하나가 된 느낌이 있었다. 오물을 닦아낸 다음 말리기 위해 창가에 걸어두는 걸레, 하지만 사람들이 그 존재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말라서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창턱에 그대로 오래오래 방치되어 있으면서, 어느새 창턱 자체의 오물로 변해버린 걸레. ”
-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서』 중
빈 몸뚱이가 요란하다. 꺼내쓸 게 남지 않은, 껍질만 남은 것 같은데 요란한 소리는 어디서 들리는 것일까? 애벌레가 긴 잠을 자고 일어나 빠져나온 허물을 떠올린다. 그게 나다. 배부른 추억은 날아가고 허물이 되어 누워 있다. 나는 허물이다. 세움대를 접지 않고 도로 위를 질질 끌며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는 젊은 남자를 본다. ‘드륵드륵 드르륵드륵’ 몸 밖의 요란함은 음악이 되는 것일까? 온몸에 호스가 연결된 것처럼 나를 채우고 있던 것들이 쭉쭉 빠져나간다. 갑자기 비가 내린다. 큰 물방울이 어깨를 내리칠 때 뛰어야 했나? 누가 내 어깨에 침을 뱉지? 버스 문이 열리니 문밖에서 젖은 먼지 냄새가 진하게 올라온다. 올라탄 먼지들이 우산을 탁탁 턴다. 버스 바닥에 내쳐지는 방울들. 그게 나다. 앞 유리로 흘러내리는 빗물을 와이프가 열심히 닦는다. ‘안녕 안녕’ 크게 손을 흔든다. 반가운 인사가 빗물을 멀리 떠나보낸다.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안녕 드르륵 안녕’. 지켜보는 나는 비와 사랑에 빠진 허즈밴드. 그게 나다. 빗물이 몸을 던져 버스를 때리는 소리가 시원하다. 파랗게 멍든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뛰어갈지 걸어갈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몸이 젖으면 나는 녹아 없어질까? 젖은 목장갑처럼 도로에 눌어붙을까?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왜 텅 비었나. 술 약속을 잡는 아저씨. 내가 나로 산다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누구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술 약속은 잡을 수 있지만, 다른 약속은 할 수 없다. 우리는 부족한 것이 만나 상처를 맞대어 함께 아물었기에 아문 상처를 다시 찢어야 한다. 내 살이 네게 가서 붙고 네 살이 내게 와서 붙었다.
광장에서.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마냥 걷는다. 투명하고 커다란 공 안에 숫자가 적힌 탁구공들이 바람을 쐬면서 둥둥 떠다닌다. 투명한 공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탁구공을 하나 잡는다. 잡고 싶은 숫자는 1. 아무리 노려봐도 찾을 수 없고 원하는 숫자를 잡는 것도 요원하여 아무거나 잡았다. 2등이다. 1등은 최신 핸드폰인데 2등은 볼펜이다. 나는 볼펜으로 살고 있다. 고개를 뒤로 젖히니 붉은 교회 십자가. 손을 뻗기 전 기도하는 걸 까먹었다. 쓰레기통 위에 버려진 빈 음료수통 4개. 그중의 하나가 나다. 빨대도 홀더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음료는 없다. 누구는 과일 주스를 마셨는데 유난히 더 더럽다. 그게 나다. 녹색의 식물들이 벽돌처럼 네모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잘려 나간 자식들을 생각하며 먼저 시들어버린 노란 잎이 있다. 그게 나다.
비를 더 맞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방을 내려놓고 걸으러 나왔다. 다 젖었으면 좋겠다. 시끄러운 허물 속에 젖은 솜이라도 틀어 욱여넣어 조용해지고 싶다. 무거워진 몸을 질질 끌며 걷는 일, 바닥에 붙어 납작해지는 일 무엇이 더 나은 삶일까 상상해 본다. 노래를 둘러업고 마냥 걷는다. 원하는 만큼 비가 오지 않는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 냅킨을 접은 배를 띄운다. 물 위에 눕는 배를 지켜보며 뱃노래를 들었다. 내 입에서 소리를 뱉어낸다. 이런 게 노래인가? 말 없는 사람이 노래를 만든다. 내가 듣고 있다. 나는 조용해진다. 비가 올 때까지 걷는다. 원하는 만큼 비가 오지 않는다. 다 젖고 싶은데, 정수리 위로 양 볼 위로 때려 맞고 싶은데 비가 안 온다. 젖은 도로 위를 뒹굴까? 웅덩이에 누워버릴까? 더 더러워지고 싶다. 더러워지고 기분이 나빠지면 짜증으로 빈속을 채울 수 있을까? 뭐라도 채우면 집에 돌아가고 싶어질까? 내 몸만 한 웅덩이가 없다.
걸어오는 사람의 말하는 입을 본다. 말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뻐끔거리는 물고기 같다. 아가미로 말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배를 손톱달 모양으로 째고 얕은 웅덩이에 누워 중얼거린다. 뻐끔뻐끔. 나는 계속 노를 저어 마냥 걷는다. 중앙 해장 앞 과속방지턱에 과속하던 오토바이가 날아간다. 나는 여전히 사람처럼 걷고 있다. 빠른 현악기 연주가 내 등을 민다. 아스팔트 위의 웅덩이에 발이 빠지지 않게 피해 걷는다. 발만 젖는 것은 싫다. 고인 물에 빠지기는 싫다. 연주가 느려진다. 풍경에 슬로우가 걸린다. 이 산책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내게 남은 얼굴은 무엇인가? 비를 맞고 싶다. 비속어이고 싶다. 나무처럼 나를 둘러싸는 장대 같은 비속어 사이를 걸으며 천둥소리를 듣고 싶다. 목이 잘린 장미를 올려다본다. 손을 뻗어 단면을 만져보고 싶다. 가지는 비었는가? 가지는 슬픈가? 꽃이 잘려 나갈 때 가시는 무엇을 했나? 젖은 잎사귀를 쓰다듬으며 검지라도 적셔보자. 젖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빨아본다. 비를 먹는다. 이것으로 내 수명이 몇 초 줄었을까 생각하며 한 번 더 먹는다. 이번엔 끈적하다. 비바른 손가락이 더 건조하다. 잎사귀를 살짝 당겨보았다. 안 떨어지려는 탄력이 느껴진다. 아슬아슬한 힘으로 반복해서 당겨보다 먼저 시든 노란 잎이 떠올라 결국엔 중력을 가지에게 넘겨준다. 여전히 비가 안 온다. 약해보이는 나무를 골라 발로 힘껏 찬다. 잎사귀에서 잠든 빗방울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이제 집에 가자. 요란하게 돌아가자.
돌아오는 길에 빈 통이 꽉 찬 비닐봉지를 봤다. 이건 비어 있는 것인가 꽉 찬 것인가? 그늘이 없는 곳의 바닥이 벌써 말라 있다. 무언가 정확히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들. 무엇을 말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말한다.
이자용 작가는 꾸준히 책을 읽고, 음악이나 무용 공연을 보며, 철학이나 글쓰기 수업을 듣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 더 깊이 가보려는 탐험가의 자세로 일상을 꾸려갑니다. 다른 이의 기록에 의존하지 않으면 숲에서 조개를 캐는 일도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 여정이 궁금해 한 달에 한 번 쯤 소식을 듣기로 했습니다. 미술 작가 이자용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