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을 밀어 밖을 보니 바다다. 어둠보다 더 어두워지고자 객실의 모든 조명을 껐다. 바다의 불빛들이 선명해진다. 해안선을 따라 지은 고층아파트 위에서, 멀리 보이는 산 위에서 정신없이 깜박이는 점멸등들 때문인지 사나운 밤이다. 흐음-하아-. 해변의 모래 위로 계속해서 밀려오는 낮은 파도의 리듬에 맞춰 숨을 마시고 뱉어 본다. ‘파도가 멈출 때까지.’ ‘해가 뜨지 않을 때까지.’ 같은 영원을 살아서 볼 수 있을까? 여전한 파도. 유리창에 새겨진 동그란 내 숨 뒤로 흐려지는 바다. 그리고 그 위에 능청스럽게 떠 있는 달을 바라보다 파도를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을 떠올린다. 힘. 힘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으로 여행 오기 며칠 전, 나는 한 공연을 보며 관성과 구심력에 대해 생각했다. 마루 위에 마주 선 두 무용수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왈츠를 추기 시작한다. 한 발이 앞으로 나아가면 상대의 발은 뒤로 물러난다. 부딪힘 없이 다가서고 내어주며 만드는 ‘빈 공간’을 오고 가는 발을 가만히 지켜봤다. 공연의 클라이맥스에서 두 무용수는 무릎을 굽힌 채 서로의 팔을 단단하게 잡고 함께 원을 그리며 돌았다. 정확한 힘으로 서로를 잡아주는 균형이었다. 나는 사랑에 절반의 균형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어느 한쪽이 조금 더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춤을 보면서, 아닐 수도 있다는 안도감에 뭉클해졌다.
내가 무엇을 본 것일까? 춤추는 그곳에 사랑이 실재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눈을 떼지 않고, 진지하게 상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깜박인 적 없는 것 같은 눈꺼풀이 무너지며 한순간 서로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사랑한다는 말 없이 주변을 연결된 마음으로 가득 채운다. 만약 한 사람이 손을 놓는다면, 그 순간 원은 무너지고 둘은 멀어진다. 그들이 같은 궤도를 돌 수 있는 것은 관성에 맞서는 구심력, 서로를 붙잡는 ‘의지의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원은 필요가 만들어 낸 단어이지 존재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원할 것만 같은 시간이 있다. 그러나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한 사람이 이탈할 때 영원은 사라지고 찰나의 순간을 깨닫는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걸으며 내가 먼저 손을 놓아야만 하는 순간을 생각했다. 나 혼자서 끝까지 버티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상대의 눈이 다른 곳을 응시할 때 서로가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헤아려본다. 왜 성장은 고통 속에 있는가? 성장은 끊임없이 버림에서 온다는 것을 안다. 어제 그린 내 그림과의 결별, 어제 했던 생각과의 결별. 혹은 영원한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과의 결별. 시몬 뵈유는 『중력과 은총』에서 “고통은 우리를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불필요한 무게를 덜어내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고통은 중력과 같다. 모든 영혼의 자연스러운 움직임, 즉 인간의 욕망, 집착, 자기애는 물질세계의 중력 법칙처럼 우리를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끌어내린다. 고통은 이 중력의 작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현상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고통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낸 불필요한 무게, 즉 집착과 상상을 덜어내고 ‘빈 공간’을 만들 때, 그 반대편의 힘인 은총이 작용한다고 본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알아버린 자들은 그것이 너무 거대하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응시했기에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내게 일어난 일에 감정을 덧씌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기를 연습해 본다.
병원에서 엄마의 재발 소견을 듣고 축구공 만한 약봉지를 받아 충남 집으로 향했다. 겨울빛을 띠기 시작한 시골의 가을은 도시보다 유난히 더 쓸쓸하다. 그늘을 가려주던 자연의 색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오래되고, 낡고, 늙은 속살이 드러난다. 차의 시동을 끄고 내리는데 감나무에서 잘 익은 홍시가 시멘트 바닥 위로 툭 떨어지며 붉은 속을 내보인다. 온 산을 돌며 계절마다 나물을 캐 엄마에게 팔던 아저씨는 여느 날과 같이 잠들었지만,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죽을 것 같아서 매일 저녁 소주를 몇 병씩 드신다던 섬말 아주머니는 속이 새까맣게 탄 의료 사진을 남기고 처음 병원에 가신 날 돌아가셨다.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듯 툭, 벌어지는 죽음. 순간은 자주 잊히고 영원을 진실처럼 믿어버린다. 그러나 세계는 모든 것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알려준다. 살면서 계속 해야 하는 일이 고통 속에서 이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 아파?” 부엌에서 작은 목소리로 언니와 나눈 대화를 들으신 것 같다. 내 감정으로 남의 눈물을 훔치지 말아야지. 시골집을 떠나며 살갗에 들러붙은 가까운 사람의 온기를 털어낸다. 추운 곳에 머물자 다짐하며 있지도 않은 껍질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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