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음악가를 상상해 보라. 그는 청중 혹은 음악 시장을 위해 연주하거나 다음 음반 작업을 하거나 순회공연을 다니거나 이미지 관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음악을 향한 자신의 욕구 때문에 연주했을 것이다.
-키스 자렛. 「뉴욕타임스」 기고 글 Jarrett, keith. New York Times Article.
하루 종일 톱질만 하던 날들이 있었다. 도구가 익숙해질 때까지 며칠이고 나무 위에 연필 선을 긋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톱질을 했다. 그러나 톱질은 하루에 6시간씩 계속할 수 있어도, 그림은 한 시간도 그리기 어려웠다. 흰 종이 앞에 앉아 다른 일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바쁜 일은 하나도 없었지만, 외면하기 위해 바빠야만 했다. 취미로 즐기는 목공 수업은 즐거웠고, 본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림 그리기는 심각했다. 목공을 할 때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아예 실패라는 단어가 그 수업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나아지고 있다’만 있을 뿐이다. 연마한 기술을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잘하고 싶은 마음 외에 다른 욕망이 없었다. 순전히 나의 즐거움을 위한 일이었다. 순전한 즐거움. 하지만 그림을 그리면서는 언제 이 순전한 즐거움을 느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났다. 왜 취미 생활의 실패는 즐거운 일이 되는 반면 잘하고 싶은 일의 실패는 즐거움을 빼앗아 가는 일이 될까?
잘하고 싶은 마음이 두려움을 키운다. 최근에 읽은 책 『완전한 연주』가 과거의 이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나쁜 연주에 대한 두려움이 음악의 모든 힘을 앗아간다는 책의 문장이 와 닿았다. 이 책에 나오는 ‘연주’라는 단어를 ‘그림’으로 바꾸면 모두 나에게 적용됐다. 나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가 하는 것은 별로라는 생각, ‘스티븐 나흐마노비치’는 그의 저서 『Free Play』에서 “예술을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성공과 실패를 다 버리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형편없는 그림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책의 저자처럼 나도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안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었기에 그림에 관한 칭찬을 받을 때면 내가 하지도 않은 거짓말을 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나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는 사람을 만나 나를 별로라고 생각하게 될까 봐 사기꾼이 되지 않기 위해 더욱더 잘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불행히도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심지어 대회에서 1등을 했을 때조차 내 그림보다 2등의 그림이 더 잘 그린 것처럼 느껴져 전시가 진행되는 내내 부끄러워했던 기억도 있다. 눈이 밝은 누군가는 그걸 눈치챘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까지 가지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 것 같고 나만 별로인 것 같다는 생각. 이것은 내가 가진 병의 증상일 수도 있다. 작업의 결과물에 항상 심각하고, 작업을 망치면 하루를 망치게 되는 이유.
어렸을 때 내가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으면 지나가던 어른들이 나를 보며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네가 아들로 태어났으면 너희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가족에게서 들은 내가 기억 못하는 나의 탄생 설화도 몇 가지 있다. 할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는 엄마는 나를 낳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낳아 보자는 계속되는 할머니의 권유로 내가 태어날 수 있었다고 하셨다. 엄마가 해주신 이야기도 있다. 엄마의 시력은 원래 좋았지만 여섯 번째 딸인 나를 낳고 너무 많이 울어서 시력이 안 좋아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마음속에 병실 침대에 누워 벽을 보고 누워 울고 있는 엄마와 그 옆에 있는 담요에 싸여 울지도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는 갓 태어난 내 모습을 기억 속에 남겼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엄마가 나를 원하지 않았다니! 그게 무척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른들의 악의 없는, 그러나 당사자에겐 듣기 힘든 말을 그대로 흡수했다. 나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이유를 찾으면서 왜 이 기억이 떠올랐을까 생각해 보면 이렇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부모님이라는 것을 나는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애교도 없고, 말수도 적었던 어린 시절 내가 엄마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으로 상을 타올 때면 엄마는 내가 엄마의 꿈나무라며 좋아하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면 나는 다시 쓸모없는 딸이 될 수도 있어.’ 같은 생각을 했다. 그 시절엔 인식하지 못했지만, 내면에 유기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나의 재능을 즐기지 못하고 나의 생존과 연결했다.
태어나 처음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 준 그 친구에게도 “내가 그림을 못 그려도 나를 사랑해 줄 거야?”라고 물었었다. 그리고 그 친구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이유도 “이제 너 없으면 못 살 것 같아.”라는 한 마디 때문이었다. 이 말의 유효기간은 일 년도 채 못되었지만, 그 말을 듣기 전에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게 내가 평생을 듣고 싶었던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커다란 구멍이 순식간에 메워져 비로소 내가 완벽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단 한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게 그림보다 더 중요했다. 그런 사람이 내가 그림을 잘 그려서 좋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아닌 나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 같다. 나는 부족하게 태어났고, 사랑을 받으려면 조건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패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 그림 그리기를 주저하고 아무 시도도 하지 않은 것일까? 좋은 작가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이니까 영원한 꿈나무로만 남고 싶어서?
이것이 나의 병이다. 그리고 그 병의 증상이 내가 하는 일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번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은 나와 그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됐다. 과거에 그것이 비록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걸 지금 알았다면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지난 글쓰기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나에게 했던 질문이 떠오른다. 그림에 대해서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냐고. 아무도 없다. 아니 있다. 나의 적 바로 나. 스스로에게 친절해지라는 말이 이제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도 이제 보인다. 나만 끊임없이 계속해서 나를 구박하고 내 그림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치료 활동 중 하나로 책의 문장을 인용해 작업을 시작하기 전 간단한 주문을 외우고 있는데 아직까진 효과가 있다.
‘나는 이전에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고, 내가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며, 내가 그리는 그림 하나하나는 내가 본 그림 중에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림 그릴 때만큼은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고, 내 그림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해도 된다는 것을 이제 배웠다. 자기 자신에 관한 용기를 키우는데 허황한 거만함이 좋은 태도가 될 수 있고 거만함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그게 내가 즐겁게 진심으로 작업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나에게 말해준다. 무엇이 될 필요 없다고. 아무것도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실패해도 괜찮으니 그리는 행위의 순전한 즐거움을 다시 찾으라고. 네 속에 뭐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걸 보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꺼내서 마주하라고. 평생 네가 할 일은 그것뿐이라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갖는데 늦은 때는 없다고 한다. 나의 탄생 설화를 새로 쓴다. 미래는 내가 기억 못하는 먼 과거를 새로 기록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