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가들의 글쓰기를 응원하며 2025년에는 이자용 작가의 에세이 '기록이 없는 탐험가' 를 진행합니다.
2025 예술가 에세이ㅣ이자용
빙하와 용암, 사이에 입김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중에서
나는 조용히 누워만 있고 싶었다. 신발 상자에 딱 맞게 들어 있는 신발처럼 163cm의 내 몸이 딱 맞는 호텔의 작은 침대에 쪼그려 누워 생각했다. ‘나는 왜 힘들게 비행기까지 타고 와서 씻지도 않고, 끈적한 몸으로, 코 푼 휴지처럼, 고향의 편안한 내 침대를 두고 타국의 침대에 이렇게 구겨져 있어야만 하는가? 그 옛날 남신의주 유동에 사는 박시봉씨의 방 같은 컴컴하고 작은 방의 김서린 창문 밖으로 북한 같은 터미널 건물이 보인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하룻밤을 지내기로 한다.
나는 이곳에 쇄빙선을 타기 위해 왔다. 멀리 오호츠크해서 흘러 내려온 유빙을 만나기 위해 배를 탔지만, 바다만 구경하다 동그랗게 돌아왔다. 검은 돌 위에 내린 눈을 보며 빙하와 용암을 떠올렸다.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이 함께 있다. 커다란 빙하에서 떨어져 나와 바다를 떠다니는 얼음조각처럼, 큰 바다를 만나 언젠간 녹아 없어질 나는 무엇에 밀려 여기까지 온 것일까? 나는 스스로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샤워를 하고 나와 물방울이 맺힌 창문에 내 입김을 불어본다. 입김의 온도는 몇 도일까? 나는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 호호 불어 입김으로 식힌다. 추운 날에는 손을 모아 작은 구멍 안으로 하하 입김을 불어 넣는다. 손안에 작은 모닥불의 불씨가 살아났다 사라진다.나는 뜻 없이 창문에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구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했다.
박시봉씨의 방 같은 호텔방
북한 같은 터미널 건물
나는 자주 내 몸을 멀리 보낸다. 넓게 펼쳐진 남극의 빙붕 위에 엄마가 보인다. 나는 왜 엄마를 남극으로 보냈는지 모르겠다. 육체가 항상 정신적인 것에 밀리곤 하는데 내가 잃는 것 몸뿐이다. 썩는 것은 몸이다. 사라지는 것은 몸이다. 만질 수 없는 것은 몸이고, 들을 수 없는 것은 목소리이다. 깜박이는 눈꺼풀 속의 눈, 나를 쓰다듬던 거친 손바닥, 푹신한 배, 나는 분명히 이런 것은 그리워할 것이다.
모든 것의 그림자가 될 이 순간들.
작년 겨울, 엄마의 목소리에 쌓인 눈이 녹지 않고 두 번째 봄을 맞았다. 눈은 얼음이 되어 목구멍에 문장의 무덤을 만들었다. 용암을 분출하는 활화산 같은 마음으로 입김을 하하 불어본다. 얼음은 녹지 않고 말을 덮는다. 뜨거운 국이 목으로 넘어가도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받아들이는 것을 배운다.
사람들이 묻는다. “엄마 좀 어떠셔? 좋아지셔야 할 텐데. 좋아지실 거야. 기도할게.” 의사 선생님이 말한다. “점점 안 좋아지는 병인 건 아시죠? 다음 치료는 MRI 보고 결정할게요.” 빙하와 용암의 온도를 가진 말들 속에서 엄마의 국을 호호 분다. 입김의 온도는 몇 도일까? 쪼개진 얼음 사이로 물방울이 맺힌다. 물방울은 수억 년에 걸쳐 빙하가 되고 얼음의 강은 고요하게 땅에 지문을 남긴다. 빙하가 녹아 없어져도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나는 나의 슬픔이며 어리석음 같은 것을 빙하와 함께 얼린다. 얼음 속에 내가 있다. 우리는 모두 얼음의 자식이다.
저녁에, 강가로 나가 걸었다. 파란 눈 위로 주황색 노을빛이 슬금슬금 밀려온다. 쌓인 눈의 가장자리가 투명해진다. 나는 또 아름다운 것을 본다. 세상이 아름다운 게 조금 밉다.
이자용 작가는 꾸준히 책을 읽고, 음악이나 무용 공연을 보며, 철학이나 글쓰기 수업을 듣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 더 깊이 가보려는 탐험가의 자세로 일상을 꾸려갑니다. 다른 이의 기록에 의존하지 않으면 숲에서 조개를 캐는 일도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 여정이 궁금해 한 달에 한 번 쯤 소식을 듣기로 했습니다. 미술 작가 이자용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