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비밀 일기는 침대 밑이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나의 마음을 침대 밑, 나무 프레임에 썼다. 그곳에서 내 시야를 바꿨다. 멀리 보지 않고 좁은 세계를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가까운 곳의 보이지 않는 너머를 상상했다. 그것이 3킬로 밖 설화산 밑 ‘신도리코’ 글씨를 보는 것보다 나았다. 풍경에 새겨진 사계절 변하지 않는 글씨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게 나의 권태였다. 알아차릴 수 없던 감정들,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없었던 순간들. 좀 더 일찍 책을 많이 읽었다면 책 속에서 내 감정을 읽었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읽기보다 쓰기를 먼저 했다.
말할 사람, 들어주는 사람이 없던 집에서 나는 주로 썼다. 쓰는 것은 배출이었다. 내 욕망을 마주하는 일. 침대 밑에 들어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쓰면서 나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이 글씨를 누군가 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아무도 보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쓰여진 글자를 새까맣게 지우고 그 위에 또 다른 욕망을 연필로 썼다. 흑연은 두꺼워지지 않았고, 나무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외로움으로 나의 어린 시절을 규정지었다. 발견된 기억들은 조작됐을 가능성이 크고, 내가 떠올리지 않았지만, 분명히 과거에 나였던 것들은 내가 되지 못했다. 지금의 나를 생각할 때 항상 과거를 떠올린다. 밤이 시작되는 파란 저녁, 고립된 시간에 몸을 웅크리고 나의 안쪽을 들여다본다. 어떤 최초의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까? 과거가 없는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가 나로 받아들이지 않은 죽은 기억 중에 충만한 시간이 있을까? 자주 새롭게 조립되는 나의 자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피하지 않고 마주한 외로움의 시간이 나를 만들어가고 내 신화를 새로 쓴다.
시끄럽지만 외로운 자의 비밀. 밤새워 서로의 후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조각조각 바느질된 누더기 같은 자아를 좁은 방에 펼쳐 놓고 하나하나 의미를 되짚어 보자. 침대 밑 어둠 속에 썼던 욕망은 무슨 색, 어떤 모양으로 남았는가? 지킬 것이 남지 않은, 완전히 망한 상태의 자유로움을 상상해 본다. 자꾸 내 치부를 내보이고 싶은 마음과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지만 무슨 짓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지닌 머뭇거림을 끄적거려본다.
어쩌면 시란, 시인이 길 위에 일부러 흘린, 암호로 가득한 일기장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기된 공책을 주워 든 누군가 빼곡한 글자를 읽어 내려간다. 이름이 없어도 시는 시다. 단어에는 주인이 없으니 이름이 없어도 시는 시다.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지는 시인의 뒷모습을 봤어도 모른 척해주는 것. 그것이 시인에게 전하는 마지막 마음이다. 어떤 마음은 말로 할 수 없다. 쓰기로만 가능한 마음이 있다. 나의 언어. 나의 세계를 써 내려갈 회화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여전히 더듬거리는 불완전한 세계를 모른 척 흘려보내는 일. 그림의 행간에 숨겨두는 나의 비밀들. 이 그림은 청자 없는 고백. 멀리 던져 보는 나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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