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작가는 2020년 브리즈 프라이즈(NEW)를 수상한 젊은 작가입니다. 줄곧 서울에서 생활하던 작가는 올해부터 울산 북구예술창작소 레지던시에 머물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매달 정원 작가가 울산에서 보내오는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4월 정원 작가 울산 체류기는 '잿빛'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원 작가의 울산 체류기 :
4월 이야기 <잿빛>
울산의 4월은 유독 비가 많이 왔다. 30일 중 16일이 날이 흐렸고 그중에 13일은 비가 왔다.자고일어나도여전히새벽같은하늘이자주반복되었다. 어디를가도잿빛이라는단어가떠올랐다. 비가오거나혹은비가올준비를하는바다는유독재가물에풀린듯한잿빛이다.
비 오는 날의 바다가 힘이 가득 담긴 심해와 같은 잿빛이라면 공장의 잿빛은 흐린 날의 하늘 같은 정적인 잿빛이다.공장 건물의 외벽은 거의 모든 색이 다 잿빛이다. 바다와 같은 종류의 색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이 둘의 온도는 확연히 다르다.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해 색을 지워버린 공장의 잿빛은 차분하고 고요한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건물에 종종 발견되는 커다랗고 파란 문구들은 공장을 더 차갑게 만든다. 그 잿빛 위에 여러 빛깔의 조명, 높게 솟은 굴뚝의 하얀 연기들 만이 이들의 움직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같은듯다른잿빛처럼울산은하나의지역에서여러모습을가지고있다. 작업실인근의분위기는대부분한적하고고요하다. 산에서들려오는새소리혹은공장에서멀리들려오는기계 경보소리가가만히들릴뿐이다. 그러나 7시, 3시, 새벽 12시가되면현대차 공장에서남색옷을입은사람들이길거리에쏟아져나오고인도가가득차며텅빈차도에교통체증이시작된다.버스를 타고 나가면 보이는 광경도 다양하다. 20분 정도 타고나가면 수많은 백화점, 대형 매장들이 가득하고 도시 중심에 커다란 관람차가 반짝이며 건물 위에서 돌아간다. 반대로 20분 정도를 가면 덜덜 덜덜 소리를 내며 경운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 바닷가에서 검은 봉지를 들고 군소를 잡는 마을 주민분들, 해변으로 밀려온 해초나 쓰레기를 줍는 나를 만날 수 있다.
색이 없는 색인 잿빛이지만 누구나 잿빛에 대한 감각과 떠오르는 이미지는 다르다. 뿌연 공장의 매연, 흐린 날의 하늘, 차가운 시멘트 외벽, 모래 섞인 바다의 포말 모두 잿빛이다. 얼룩덜룩한잿빛가득했던 4월의울산을지나 5월에는어떤모습을볼수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