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즈 아트페어는 10주년을 맞아 뉴스레터를 통해 다양한 작가들의 소식과 작품을 콘텐츠로 만들어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정원 작가, 울산에 가다
정원 작가는 2020년 브리즈 프라이즈(NEW)를 수상한 젊은 작가입니다. 줄곧 서울에서 생활하던 작가는 올해부터 울산 북구예술창작소 레지던시에 머물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매달 정원 작가가 울산에서 보내오는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5월 정원 작가 울산 체류기는 '경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원 작가의 울산 체류기:
5월 이야기 <경계>
무언가를 구분할 때 우리는 선을 긋는다. 선은 일종의 경계이다. 경계 너머로 이곳과 저곳이 구분되고 만들어지며 서로 다른 것들의 틈 사이에 경계가 존재한다. 경계는 서로를 지키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바닷가는 바다와 육지의 바깥 공간으로 서로의 경계임과 동시에 이들이 뒤섞인 모호한 공간이다. 울산의 바닷가는 해안선을 따라 공장과 거대한 조선소가 위치해 있어 마치 인간이 바다를 만든 것 같다. 하지만 공장이 없는 지역의 바닷가는 끝없이 펼쳐져 있고 깊고 푸르다.
나는 그중에서도 주전[1]의 바닷가를 좋아한다. 모래가 아닌 동글동글한 몽돌로 이루어진 주전의 바다는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몽돌은 주로 까만 돌로 만들어진 바닷가로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어느 하나 같은 돌이 없이 알록달록하다. 푸른 곰팡이가 피어있는 듯한 돌멩이, 옛 시대의 벽화같이 알 수 없는 무늬들이 있는 돌멩이, 쇳조각과 뭉쳐져 하나가 된 돌 등 다양하다. 이 돌들이 파도에 굴러오고 굴러가면서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차르르’라고 많이 말하는데 이것은 파도가 낮을 때만 해당된다. 파도가 조금 높거나 비가 오기 직전에는 마치 파도가 바닷가의 남아있는 돌을 모두 바다로 쓸어갈 듯이 ‘쒜에에에에엑’ 하는 소리가 난다.
[1] 주전몽돌해변 : 울산 동구 여름철 대표 해변 관광지, 울산 북구 강동동 일대 해변으로 몽돌로 이루어져 있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고요히 파도 소리만 들리던 바닷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 하나 없이 텅 비어 있던 바닷가는 모든 시선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멍하니 걸었던 몽돌 위는 크고 작은 텐트들이 사방으로 줄을 뻗어 쳐 있다. 바다 바람에 실려오던 가벼운 바다 냄새는 이제 찐득한 고기 냄새가 난다. 자연의 공간에 인간이 들어왔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인 바닷가에 사람들이 들어오자마자 바다의 풍경이 바뀌었다. 바다에 쓸리고 부식되어 뭉그러지거나 낡은 쓰레기들만 보였던 바닷가는 이제 멀쩡하고 고깃기름이 끈적한 새로운 쓰레기들이 가득하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보이던 쓰레기는 바닷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모든 곳에 있다. 바닷바람 한 번에 음식을 포장한 비닐, 돗자리 포장지, 과자봉지들이 순식간에 쓰레기가 된다.
5월 31일 바다의 날이었다.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챙겨 바다로 갔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쓰레기를 많이 못 주울 것 같아 걱정이 됐다. 10분 남짓 한 시간, 봉투가 가득 차고 남는 손도 없어서 줍기를 멈췄다. 며칠 뒤 다시 바다에 갔다. 5분 만에 봉투를 다 채웠다. 사람들은 더 가득했으며 바닷가의 중간중간 기름 붙은 잿더미와 까맣게 탄 돌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