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으로 날아가 버린 나의 새를 찾을 수가 없다. 나무 속으로 숨어버리면 네가 아무리 울어도 달래줄 수가 없어. 누가 우는 소리인지도 모르겠어.
나의 아버지 재왕씨는 지구에서 마지막 3시간을 나와 함께 했다. 당뇨합병증으로 인해 아버지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으셨다. 내가 아버지의 눈이 되어 본 적이 없으니 나는 그의 시야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다.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듯한 힘없는 눈동자를 보며 추측해 볼 뿐이다.
나는 서울로 고등학교를 진학한 이후로 계속해서 서울과 충남을 오가며 지냈는데 그 무렵 재왕씨는 몇 번의 가벼운 사고 이후로 운전대를 놓으셨고 내가 충남에 내려가는 날 밀렸던 일을 함께했다. 본가에서 독립한 이후로 언제나 부모님의 외로움이 걱정됐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나도 항상 집이 그리웠다. 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주말마다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고 집에 내려갈 때면 항상 꽉 찬 열차 객실을 보며 연어 떼를 생각했다. 알을 낳는 것도 아니고 왜 많은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까? 오랫동안 부모님을 뵙지 않으면 불안했고, 두 분이 조용히 티브이를 보는 장면을 생각하면 서글퍼졌다. 나도 하루 종일 그렇게 보내는 날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엄마 아빠의 그 모습은 한겨울에 일찍 지는 해를 보는 것처럼 마음 한편이 접질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날은 내가 집에 내려가는 날이 아니었다. 친구와 놀던 것을 예정보다 일찍 마무리하고 내려가려니 짜증도 좀 났었다. 사무실 앞에 도착한 후 주차를 하고 건물을 올려다보니 아빠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 막상 내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계신 아빠를 보니 짜증 나는 마음은 다 사라지고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과에 가서 정기적으로 드시는 혈압약을 처방받고 약국으로 약을 사러 갔다. 처방전을 약사에게 제출한 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손을 뒤로 모으고 약국 벽에 기대 서서 계신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방금 마주친 눈이었지만 나는 아빠가 계속 나를 보고 계셨다고 느껴졌다. 오후 네 시쯤이었을까? 약국의 유리문으로 들어오는 긴 햇빛이 아빠의 몸에 대각선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검은색과 흰색의 마주한 직각삼각형 두 개가 보였다. 아빠는 나와 달리 쌍꺼풀이 있는 큰 눈을 가지고 계셨다. 검은 삼각형 너머로 보이는 재왕씨의 눈은 이전과 달리 많이 부어있었다. 오랜 시간 봐온 부릅뜬 큰 눈과 달리 풀어진 눈꺼풀은 반투명한 간유리처럼 느껴졌고, 그 틈으로 보이는 뿌연 아빠의 눈동자가 나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빠? 왜 그렇게 보세요?” 웃으며 묻는 말에 아빠는 아마 “그냥.” 이라고 대답하셨던 것 같다. 이때 나는 아빠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고 느꼈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약국을 나오면서 아빠는 목욕탕을 갈지 말지 고민하셨다. 나는 인심 쓰듯이 아빠한테 말했다. “전 차에서 할 일 많아요. 걱정하지 마시고 나오신 김에 볼 일 다 보고 들어가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럼. 40분 뒤에 나올게.” 말씀하시고 나를 향해 왼손을 높이 들어 인사하는 아빠를 나는 차창 유리 너머로 봤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배 위로 작은 흰 수건 한 장만 두른 채 구조대의 들것에 실려 나오는 아빠를 목욕탕 입구에서 봤다. 땅으로 떨어진 왼팔이 사정없이 흔들리는데도 상관없다는 듯이 눈을 감고 계신 아빠의 얼굴을 보며 ‘이러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같이 구급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여전히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아빠의 왼손을 주워 들것에 올려 논 후 꼭 잡고 있었다.
응급실로 빨려 들어간 아빠를 기다리며 병원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기도했다. 깜깜한 눈꺼풀 위로 펼쳐진 화면에 약국에서 마주친 아빠의 얼굴이 영사됐다. 그림자가 걷힌 얼굴 위로 선명한 미소가 보인다. 흐뭇하게 웃으며 나를 보고 계신 아빠의 부은 눈이 점점 환해지며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한다. 더 깜깜한 어둠을 만들고 싶어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을 때 손바닥에 끈적한 물과 뜨거운 물이 범벅이 되어 손가락 사이로 엉겨 들러붙었다. 이 의자에 앉기까지 나는 어떤 소리도 낸 적이 없다.
누구도 나를 원망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죄를 고백하는 기분이 들어 가족 혹은 다른 누구한테도 이 말을 하지 못했다. 목욕탕에 가는 걸 고민하는 아빠에게 볼일 다 보시라고 제안한 것은 나였다고. 그날 “무리하지 마시고 내일 또 같이 나와요.”라고 말했더라면 우리에게 시간이 더 있었을까? 내가 남자여서 아빠랑 같이 목욕탕에 갔었다면 탕에서 쓰러지신 아빠를 좀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을까?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는 볼거리에 걸렸었다. 주말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으로 누워 나를 보고 계신 아빠 얼굴이 기억난다. 그때도 아마 아빠는 자는 나를 지켜보고 계셨던 것 같다. 얼굴이 축축해서 만져보니 아빠가 내 볼에 침을 잔뜩 발라놨었다. 그래야 볼거리가 낫는다고. 당뇨에는 걷는 운동이 좋다고 아빠는 저녁 식사 후 자주 산책하러 나가셨다. 같이 가겠냐는 아빠의 산책 제안을 나는 몇 번 거절했다. 항상 중문을 여시며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나를 향해 고개를 반만 돌리고 말씀하셨었다. 내가 눈을 감았을 때,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나를 보는 사람. 나를 봐야 할 때는 옆을 보는 사람.
아빠 눈엔 내가 어떤 모습이었을까? 얼마큼의 윤곽을 보셨을까? 나는 아빠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았을까? 여섯 명의 딸 중에 자신의 얼굴을 제일 많이 닮은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다른 언니들과도 이런 하루를 보내셨을까? 아빠의 몸이 땅속 깊이 묻힌 지 이제 13년이 됐지만 약국에서 본 그 눈은 아빠와의 다른 기억을 다 집어삼키고 내 눈동자의 뒤편에 조각되어 몸의 일부가 된 것 같다. 마음이 처연해질 때 그리운 마음이 일 때 빛 속에 그 눈빛이 떠오른다. 나중에 엄마한테 들은 말인데 그날 아침 아빠는 사무실에 나가시며 엄마에게 “아무래도 나 오래 못 살 거 같어.”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랑을 왜 숨기는 것일까? 무슨 마음이었을까? 왜 널 사랑하고 아낀다고 말하지 못하고 숨기는 걸까? 왜 표현하지 못하신 걸까? 마주침은 눈치챔일까? 사건의 해결일까? 비밀스러운 마음을 내가 가로챈 걸까? 사람의 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내가 기억하는 눈빛이 또 있을까? 내가 기억해야만 하는 눈빛이 있을까? 결국엔 내가 읽어내고 싶은 눈동자를 만날 수 있을까?
봄이 되면 산책로로 바뀔 도로 위를 차로 달리며 아빠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내년 봄에는 이제 이 길에서 운동하면 되겠다.”
“맞아요. 봄 되면 진짜 예쁠 거 같아요. 같이 나와요. 아빠.”
그때는 창밖에 잎이 다 떨어진 2월의 은행나무를 보고 계신 아빠의 옆모습을 내가 룸미러로 몰래 지켜봤다.